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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산기도원, 이천석목사 부흥설교1

설교제목은 "충만케 하옵소서" 한얼산기도원, 198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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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교회
기사입력 2015-04-29



법과 교회는 오순절주간을 앞두고 앞으로 4일 동안 이천석목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기로 했다. 이번 성회에 독자들은 깊은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 위의 영상을 클릭하면 그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


▲     © 법과 교회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자 한 사람, 한사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찮고 보호해 주시네"

"성령충만으로 뜨겁게 뜨겁게, 말씀충만으로 새롭게 새롭게, 은사충만으로 강하게 강하게"


▲     © 법과 교회

이 설교는 1980년도에 한얼산 기도원에서 이천석목사가 "충만케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한 부흥설교 이다. 오늘부터 '법과 교회'는 이천석목사를 초청하여 심령부흥회를 갖기로 한다. 이단감별사들도 그를 이단이라고 폄하하지 않고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 신학생들, 목회자들, 평신도들 역시 이천석목사의 영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치장을 52번 갔다가 온 사람으로서, 한다리가 없는 상이군인이었고, 배움이 없었던 사람인데 수많은 목사들과 지식인들이 그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 광성교회도 1980년도에 그를 초청해서 인산인해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광성교회 교인들도 옜날의 영성을 다시금 새기기를 바란다.         

이천석목사는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목사이다. 그보다 더 영향력있는 부흥강사는 없었을 것이다. 차범근, 양영자, 고은아, 김국도, 이태희, 문원순, 이원호 목사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병을 고치고 새사람으로 변하였다. 이번에 부총회장출마후보로 선정된 문원순목사까지 그의 말씀을 듣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절반 정도는 한얼산 기도원을 갔다 왔을 것이다. 필자도 1979년 한얼산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고 방언체험을 하고, 한양공고를 나왔지만 기도응답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얼산은 영적인 고향이기 때문에 지금도 자주 찾는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는 아들 이영금목사가 매주마다 찬양과 말씀으로 철야를 인도한다.

▲     © 황규학

▲     © 황규학

이천석목사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구수하고 심령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이목사는 주로 심령의 변화와 은혜체험에 촛점을 두고 설교했다. 그래서 심령이 깨지는 소리를 "와장창 중창 주장창" 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은 당시 필자와 삼광교회(합동교단)에 다녔던 박심목사(캐나다 베리교회은퇴)가 상명여고 영어교사일 무렵, 동료 김상철목사의 부탁을 받고 지필했던 책이다.  

합동측 소속목사였지만 이천석목사는 성령과 은혜위주 였고, 설교는 상당히 복음적이었고 영육의 연결을 중시했다. 한다리의 힘으로 설교했고, 안수를 하고 나면 그의 고무다리에 맞닿은 살갗부분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래도 한 다리로 집회시마다 수 천명을 안수하면 방언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이천석목사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시는 성전에 수천명이 들어왔기 때문에 3층까지 앉을 자리가 없었고 자리 쟁탈전이 일어났을 정도이다. 

▲     © 법과 교회

그는 인도에 가서 도마가 순교한 자리에서 약 50만명이 모이는데서도 순교의 정신으로 집회를 인도했고, 가는 곳 마다 인산인해 였다. 소경을 72명 고쳤고, 앉은뱅이, 목발 짚고 참석한 사람들 수십명을 고쳤다. 이성봉목사집회를 해산하기 위하여 찾아갔다가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된 후에 중앙신학교를 가서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였다. 중앙신학교출신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이천석목사는 거룩과 고아함을 부르짖다 1차 목회에 실패하고, '생긴대로 목회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태백산에 들어가서 홀로 100일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생긴대로 목회하여 두 달만에 교인이 300여명으로 성장하였다고 했고, 성복중앙교회를 세워 재적인원만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한얼산기도원은 겨울만 되면 인산인해 였다.   

1986년 이천석목사는 순복음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오는 도중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따라 혈압약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소천했다. 이천석목사의 죽음은 한국교회로서는 큰 거목을 잃은 것이다. 70-80년도 당시 교회는 순복음교회, 기도원은 한얼산 기도원이었다.  조용기, 이천석 목사는 한국교계의 거묵이었다.

당시 전성시대 였던 이천석목사의 설교를 다시 들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의 설교는 복음적이고, 영적 능력과 은사가 있었고, 유모어가 있었다. 현재 50초반 이후 70세까지 이천석목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35년 전의 이천석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고, 영성을 새롭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거목이 사라지자, 한국교회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오늘에 와서 이천석목사의 설교를 다시 들어 영성의 풍부함을 즐길 필요가 있다.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죽어서도 말했다.  한국교회는 이제 이단, 삼단, 이단옹호 등 교리분쟁을 할 것이 아니라 영성에 관심을 갖고 수렁에 빠진 한국교회를 건져내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설교는 자신들만이 정통이라는 바리새적 증후군을 가진 이단감별사들이 듣고 이단증후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야 한다. 바리새적 정죄충만이 아니라 성령충만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감도는 북한 강물에 발목을 담그며 우뚝 선 성산...
얼굴과 얼굴에 화평을 삼고....
산마다 골마다 풍성한 은혜....

▲   법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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